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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휴일날 야음을 틈타 동족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고 한국엔 없었던 t34 탱크의 캐터필터의 굉음을 울리며 38선을 넘어 도도히 남침을 개시한 북한의 새파란 지도자 김 일성.
38세의 젊은놈이 기세좋게, 남침을 개시했었다.
그는,
적화야욕에 불타 스탈린을 졸라 그들의 최신식 무기를 암암리에 북으로 들어왔지만, 평화무드에 젖은
남한의 이 승만 정권은 김 일성의 그런 야욕을 모르고 너무도 얕잡아 봤던 것을 역사를 통해 알수 있다.
해방이 되자 쏘련군 장교의 신분으로 평양에 입성한 젊은 김 일성나이 33세의 청년.
이미 스탈린이 그를 북한의 지도자로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이용했지만.....
스탈린의 꼭두각시로 군림한 김 일성.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 에치슨의 망언.
-남한을 그들의 방위선 안에 넣지 않았던 것은 호시 탐탐 남침을 준비하는 김 일성에겐 절호의 기회
였다.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해 신식무기 지원을 해달란 그자의 간곡한 애원.
미국과의 확전이 우려된단 생각에 스탈린은 첨엔 김 일성의 요구를 묵살했지만...
남한의 미국의 방위선 밖에 놓인 것을 안 그는 김 일성에게 남침을 지시했단다.
-미국이 이번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지.
일제의 착취속에, 아직도 생활여건이 기반도 잡히지 않는 어수선한 정국의 1950년.
누가 상상했으랴...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김 일성이 기습남침을 도발할줄.....
당시 남한은 무기다운 무기가 전혀 없었던 때라 북의 T34탱크는 저항한번 받질 않고 파죽지세로 3일만에
중앙청에 걸린 인공기와,김일성과 스탈린의 대형초상화...
미처 피난도 못간 서울시민들은 그들이 치하에 노예처럼 살아야 했다.
충분히 피난할수 있는 시간도 주지 않고서 한강을 끊은 비정.
이미,
서울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방송은 용맹한 국군이 적을 물리쳤단 방송이 나왔다하니
얼마나 한심한 작탠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국민들.
그 전쟁의 포화속에 얼마나 피폐한 일상였을까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36년의 일제치하에서, 해방되어 모처럼 한 민족이 한 목소리로 통일된 나라를 건설해 살아야 하는데
30대 중반의 전쟁광이고, 적화통일에 미친 김 일성의 야욕앞에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였지 않는가.
해방된 나라의 일본군국주의의 때를 벗긴단 그럴듯한 핑게로 일본의 무장해제를 할 명분으로 남북이
38도선을 그어 역활분담했던게 이제껏 끊지 못한 한 맺힌 휴전선의 전주곡였다.
우리의 해방과는 아무런 관련없는 강대국의 논리에 남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했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
인가?
무장해제만 하곤 넘겨줄줄 알았던 우리나라.
이런 저런 이유로 머물던 양 강대국.
한반도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혈전을 벌인 그때...
우리의 은인 맥아더 원수의 9.28인천상륙 작전.
김일성의 허를 찔러 독안에 든 북괴군을 섬멸하면서 북진을 하여 압록강까지 진출해 통일을 바로 눈앞에
둔 그때...
철천지 원수 모택동의 중공군 인해전술.
흥남철수를 단행해야만 했고,<장진호>전투에선 많은 유엔군이 희생된 것.
휴전을 선언했지만,
3년이란 긴 시일동안 밀리고 밀린 피아간의 전투.
38선 아닌 휴전선이 그어진 작금.
저놈들이 지배했던 <인공시절>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손에 살륙당하고 했는지...
동족끼리 죽이고죽는 민족상잔의 6.25
오늘의 번영된 나라를 구가하는것도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상상할수 없는 일.
어떠한 이유를 붙여도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나라는 없었을것이다.
젊은 세대가,
알아야 할것이 가장 최근의 현대전인 6.25의 비극.
북한군의 만행을 알아야만 대처가 가능할거 아닌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그 힘든시절.
우린 그래도 행복한 시절을 살아왔다고 할수 있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어 보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6.25 동족상잔의 전쟁을 이르킨 것이 북침이란 말을 하는 얼빠진 자들이 있다.
6.25전쟁은,
김 일성의 사전준비에 의해 착착 진행된 계획된 적화통일의 야욕을 숨긴 김 일성이 이르킨 남침였다.
-유엔의 결의가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한건 왜 그랬나?
38세의 젊은놈이 기세좋게, 남침을 개시했었다.
그는,
적화야욕에 불타 스탈린을 졸라 그들의 최신식 무기를 암암리에 북으로 들어왔지만, 평화무드에 젖은
남한의 이 승만 정권은 김 일성의 그런 야욕을 모르고 너무도 얕잡아 봤던 것을 역사를 통해 알수 있다.
해방이 되자 쏘련군 장교의 신분으로 평양에 입성한 젊은 김 일성나이 33세의 청년.
이미 스탈린이 그를 북한의 지도자로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이용했지만.....
스탈린의 꼭두각시로 군림한 김 일성.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 에치슨의 망언.
-남한을 그들의 방위선 안에 넣지 않았던 것은 호시 탐탐 남침을 준비하는 김 일성에겐 절호의 기회
였다.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해 신식무기 지원을 해달란 그자의 간곡한 애원.
미국과의 확전이 우려된단 생각에 스탈린은 첨엔 김 일성의 요구를 묵살했지만...
남한의 미국의 방위선 밖에 놓인 것을 안 그는 김 일성에게 남침을 지시했단다.
-미국이 이번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지.
일제의 착취속에, 아직도 생활여건이 기반도 잡히지 않는 어수선한 정국의 1950년.
누가 상상했으랴...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김 일성이 기습남침을 도발할줄.....
당시 남한은 무기다운 무기가 전혀 없었던 때라 북의 T34탱크는 저항한번 받질 않고 파죽지세로 3일만에
중앙청에 걸린 인공기와,김일성과 스탈린의 대형초상화...
미처 피난도 못간 서울시민들은 그들이 치하에 노예처럼 살아야 했다.
충분히 피난할수 있는 시간도 주지 않고서 한강을 끊은 비정.
이미,
서울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방송은 용맹한 국군이 적을 물리쳤단 방송이 나왔다하니
얼마나 한심한 작탠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국민들.
그 전쟁의 포화속에 얼마나 피폐한 일상였을까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36년의 일제치하에서, 해방되어 모처럼 한 민족이 한 목소리로 통일된 나라를 건설해 살아야 하는데
30대 중반의 전쟁광이고, 적화통일에 미친 김 일성의 야욕앞에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였지 않는가.
해방된 나라의 일본군국주의의 때를 벗긴단 그럴듯한 핑게로 일본의 무장해제를 할 명분으로 남북이
38도선을 그어 역활분담했던게 이제껏 끊지 못한 한 맺힌 휴전선의 전주곡였다.
우리의 해방과는 아무런 관련없는 강대국의 논리에 남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했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
인가?
무장해제만 하곤 넘겨줄줄 알았던 우리나라.
이런 저런 이유로 머물던 양 강대국.
한반도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혈전을 벌인 그때...
우리의 은인 맥아더 원수의 9.28인천상륙 작전.
김일성의 허를 찔러 독안에 든 북괴군을 섬멸하면서 북진을 하여 압록강까지 진출해 통일을 바로 눈앞에
둔 그때...
철천지 원수 모택동의 중공군 인해전술.
흥남철수를 단행해야만 했고,<장진호>전투에선 많은 유엔군이 희생된 것.
휴전을 선언했지만,
3년이란 긴 시일동안 밀리고 밀린 피아간의 전투.
38선 아닌 휴전선이 그어진 작금.
저놈들이 지배했던 <인공시절>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손에 살륙당하고 했는지...
동족끼리 죽이고죽는 민족상잔의 6.25
오늘의 번영된 나라를 구가하는것도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상상할수 없는 일.
어떠한 이유를 붙여도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나라는 없었을것이다.
젊은 세대가,
알아야 할것이 가장 최근의 현대전인 6.25의 비극.
북한군의 만행을 알아야만 대처가 가능할거 아닌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그 힘든시절.
우린 그래도 행복한 시절을 살아왔다고 할수 있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어 보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6.25 동족상잔의 전쟁을 이르킨 것이 북침이란 말을 하는 얼빠진 자들이 있다.
6.25전쟁은,
김 일성의 사전준비에 의해 착착 진행된 계획된 적화통일의 야욕을 숨긴 김 일성이 이르킨 남침였다.
-유엔의 결의가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한건 왜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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