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ple Diary

통플다이어리 - 마음을 나누는 인터넷 일기장

일기장
2026.05
11
월요일

정금 누님

컨텐츠 정보

  • 작성일

본문

어제, 오후 안산사는 <용기>의 전화.
-당숙?
제가 분당 이모님께 다녀왔는데요,지금 병실에 눠 있어요 아마도 오래 사실거 같질 않아요
한번 다녀 오십시요 저도 갑자기 오늘 다녀왔어요 후회할거 같아서요..
사촌누님의 아들용기니까, 당연히 외숙이든지 아제란 말을 쓰면 되는데 <당숙>이라 한다.
아버지 편에서 4촌을 당숙이라 하지 엄마사촌은 당숙이란 말 쓰질 않는데 그걸 일일히 시정해 줄 필요가
있을까?
분위기 잡아서 애길 해줘야 하는데 그런 시간을 잡지못했다.
그것도 내가 애기 해주어야 할 의무다.

분당의 <정금 누님>
어려운 시절엔, 후암동에서 오랫동안 사시다가 집이헐려 분당아파트로 이살했는데..
장거리 때문에, 자주 뵙지 못했다.

서울에 첨 올라왔을때,60년대 중반.
서울역 뒤는 그 흔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판잣집을 지어 무허가 건물로 살았던 곳.
<동자동 판자촌>으로 유명하다.
다닥 다닥 붙은 판잣집 건물, 한채라봐야 겨우 4-5 평정도?
문을 열면 바로 작은 부억과 방 한칸이 전부인 그런 집.
발도  제대로 못 뻗고 자야만 되는 그런 지 좁은 방.
은숙이네와, 경환이, 그리고  광래 형님이 연이어 지어진 집에서 오손 도손살았지.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의  공통된 가난한 살림살이의 모습이 그랬다.
그래도 은숙이집은, 판잣집이지만, 이층 다락방이 있어 조금은 더 넓어 보였다.
매형이 후암동에서 오랫동안 <쌀가게>운영한 탓에 그런데로 조금은 여유가 있어 보였지.

후에, 서울생활할때는..
4촌 누님들과 4촌형님들이 든든한 빽  처럼 보였다.
성북동의 4촌 누님과, 삼선동의 친누나집.
외로운 서울에서 직장생활할때., 갈수 있는 친척이 도처이 있다는 사실.
마음만이라도 조금은 든든했다.

정금 누님은, 법없이도 잘 사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사고로 사는 형이지만..
누나는 뚜욱 부러지는 강단있는 성격으로 아닌건 아니다 하고 선을 그은다.
옳은 것엔, 악착같이 대드는 성격으로 옳고 그름이 확연한 성격이 난 좋았다.
쉬는날엔, 후암동 누님댁을 자주도 갔었다.
항상 반갑게 맞아주곤 맛있는 것도 사주곤 했다.
-보름달 빵과, 후암시장에서 파는 떡.
내가 좋아한줄 알곤 자주도 사 주셔서 맛있게 먹곤했다.

금화 시민아파트 살때,1976년 겨울.
갑작스럽게 아픔이 찾아와서 그 누님이 오셨다.
-너 이거 안되겠어 내가 시골로 전화해 니 형이 오라고 해야지 큰일난다.
부랴 부랴 올라온 형의 주선으로 <적십자 병원>에 입원했다.
상황판단을 하시곤 입원까지 이어지게 한 누님.
ㅡ그후 병원에 있을땐 자주 병문안 오셨다.
-이거 먹어봐 네가 좋아한 그 빵..

<보름달> 빵.
마치 친 누나같이 곁에서 챙겨주신 정금누님.
그 배푼정을 잊고 내가 살았으니 얼마나 야속할것인가?

분당 서현역 부근의 병원이라니 <은숙>이와 전화하곤 가야지.
이러다가 쾌유도 못보고 가시면 얼마나 후회가 될것인가?
가신뒤에 영전에 아무리 흐느껴 운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엄만,그런데로 조금은 호전된거 같아요 아직은 가끔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면 길게 이어질거 같질 않다.
현재 90 라니 그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
왜 요즘 이런 비극적인 소식이 자주도 들려오나?
왜?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