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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역 근방 식당서 가까운 친척들과 점심을 했다.
전철역에서 가까운 곳에 식당을 정한건 나를 위한 형님의 배려.
조카 병욱이가,화서역서 현장까지 자기 엄마랑 태워주곤 갔다.
같이 동석을 권유했더니 어른들 모임에 가는건 메너가 아니란 애긴데...
전부가 친척인데 무슨 그런걸 따지냐 해도 그 고집을 꺾지 않은건 자기아버지의 그 고집을 왜 닮지
않겠는가?
-바로 그 식당옆에 사는 <준>부부.
-이종사촌처남 <덕>이.
-형님과 장남인 대현이와 호현이 부부등.
8명이 한꺼번에 몰리니 그 자리가 꽉 찬다.
-호현아, 넌 꼭 산적놈같구가 수염을 좀 깎고다녀 임마 젊은놈이 추해보여.
-저요? 친구들이 야성미가 풍긴다고 다들 좋다고 하는데요?
-그게 멋이여? 난 꼭 산에서 도둑질하는 산도둑놈 같기만 하다.
-그냥 둬 다 자기멋에 사는데 뭐...
옆에서 <준>의 남편이 거든다.
나이들었건 젊은이건 깔끔하게 다니면 멋져 보이는데 수염을 길고 다니는 것은 게으름피우는 놈들
같아서 좋아보이질 않는다.
다들 오리구이를 먹잖다.
-형님도 소주 딱 2잔, 덕성인 그래도 잘 마신다
애주가 였던 <준>은 몸에 않좋아 줄여서 그래도 몇잔은 마신다,
그의 남편은 심장병으로 술을 완전 끊었다고 함서 한잔도 마시지 않는다.
건강관릴 그렇게도 극성스러울 정도로 신경쓴 사람이 희귀암에 걸려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좌중을 웃기는 말과 잔 소리는 여전하다.
이모 할머니의 손녀인 <준>과 극적인 결혼을 한 그 사람<두>
나 보담 5살 연상이어도 서로가 편하게 말을 한다.
어떻게 동생의 남편인 매제에게 존칭을 쓸수 있는가
처음 시티에 올라왔을때 그를 만났었다.
범박리 신앙촌 비니루 제품이 전국적인 선풍을 이르키던 시절.
돗자리,시장 바구니,베개, 등등..
오갈데가 없어 그의 공장에 잠시 일을 했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나의 눈엔 그의 존재는 대단해 보였다.
마무리 하는 작업여성이 20여명, 틀을 만들어 일을 하는 남자공원 6명.
아마도 3개월 정도는 일을 했던거 같다.
당시 18살의 <준>
이모할머니의 손녀인 <준>은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품에서 성장했기에 제대로 학교도 못가고
살아온 처지지만,착하고 뛰어난 미모로 그 나이에 군침(?)을 삼키는 사내들이 많았다.
미인이란 이유로 여잔 그 모든 불리한 조건들이 상쇄시킨 것인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현 남편 <두>가 결혼으로 골인
그 당시에 서울의 유명대학을 나온 귀재인 <두>가 준과 같은 내놀것 없는 여자와 결혼을 부모가 성원했을
리가 만무였다.
-넌 무엇을 보고 멀쩡한 놈이 그런 여자와 결혼을 한단 것이냐?
-가난도, 학교도 다 후에 얻을수 있지만 한번 태어난 미모는 절대로 고칠수 없어 그럽니다
꼭 결혼을 할겁니다.
부모의 질문에 그렇게 답을 해서 한 동안 유행어가 되었었지.,
꼭 그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하였으나 군인의 신분으로 나올수가 없었다.
<두>의 부모는 물론 형제들도 모두 불참했단 후문.
아무리 미인인들 세월앞에 어떻게 변하지 않을것인가?
화무십일홍인데....
후에 들은 일이지만,<준>은 남편과의 불화가 심했더라고 애기해준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 미인을 얻었다면 한결같이 사랑을 하면 안되는 것인가?
<권태>였을까?
한동안 <준>은 우울증 비슷한 병으로 힘들게 살았단 애길 동생으로 부터 들었다.
-과연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기나 한것인가?
시티에서 맺은 절친 <덕>
이종 사촌동생과 연을 맺어 살고 있지만 이들도 결코 행복한 모습은 아닌거 같다.
-그럼 나는 행복한가?
자신있게 답을 못하겠는건 같은가 보다.
그래도 이해가 가기전에, 가까운 얼굴들 모여서 식사를 한건 잘 한거 같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서 그럴까?
의외로 식비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하긴, 소주 3병과 음료수 6병이니 그럴만도 하지.
-오빠 고마워요 서울서 여기까지 오셔서 밥도 사주시고 너무 고마워요.
-아냐 동생을 오랫만에 만나니 내가 더 즐겁다.
그냥 남편 포기하고 살아 너무 집착하면 병이 난다.
-그래요, 난 뭐 신경안쓰고 무덤덤하게 살아요 그래서 더 좋아요
<준>의 그런 말이 진실일까?
야윈 몰골이 너무도 짠해 보인다.
그 매력넘치게 이뻤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전철역에서 가까운 곳에 식당을 정한건 나를 위한 형님의 배려.
조카 병욱이가,화서역서 현장까지 자기 엄마랑 태워주곤 갔다.
같이 동석을 권유했더니 어른들 모임에 가는건 메너가 아니란 애긴데...
전부가 친척인데 무슨 그런걸 따지냐 해도 그 고집을 꺾지 않은건 자기아버지의 그 고집을 왜 닮지
않겠는가?
-바로 그 식당옆에 사는 <준>부부.
-이종사촌처남 <덕>이.
-형님과 장남인 대현이와 호현이 부부등.
8명이 한꺼번에 몰리니 그 자리가 꽉 찬다.
-호현아, 넌 꼭 산적놈같구가 수염을 좀 깎고다녀 임마 젊은놈이 추해보여.
-저요? 친구들이 야성미가 풍긴다고 다들 좋다고 하는데요?
-그게 멋이여? 난 꼭 산에서 도둑질하는 산도둑놈 같기만 하다.
-그냥 둬 다 자기멋에 사는데 뭐...
옆에서 <준>의 남편이 거든다.
나이들었건 젊은이건 깔끔하게 다니면 멋져 보이는데 수염을 길고 다니는 것은 게으름피우는 놈들
같아서 좋아보이질 않는다.
다들 오리구이를 먹잖다.
-형님도 소주 딱 2잔, 덕성인 그래도 잘 마신다
애주가 였던 <준>은 몸에 않좋아 줄여서 그래도 몇잔은 마신다,
그의 남편은 심장병으로 술을 완전 끊었다고 함서 한잔도 마시지 않는다.
건강관릴 그렇게도 극성스러울 정도로 신경쓴 사람이 희귀암에 걸려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좌중을 웃기는 말과 잔 소리는 여전하다.
이모 할머니의 손녀인 <준>과 극적인 결혼을 한 그 사람<두>
나 보담 5살 연상이어도 서로가 편하게 말을 한다.
어떻게 동생의 남편인 매제에게 존칭을 쓸수 있는가
처음 시티에 올라왔을때 그를 만났었다.
범박리 신앙촌 비니루 제품이 전국적인 선풍을 이르키던 시절.
돗자리,시장 바구니,베개, 등등..
오갈데가 없어 그의 공장에 잠시 일을 했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나의 눈엔 그의 존재는 대단해 보였다.
마무리 하는 작업여성이 20여명, 틀을 만들어 일을 하는 남자공원 6명.
아마도 3개월 정도는 일을 했던거 같다.
당시 18살의 <준>
이모할머니의 손녀인 <준>은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품에서 성장했기에 제대로 학교도 못가고
살아온 처지지만,착하고 뛰어난 미모로 그 나이에 군침(?)을 삼키는 사내들이 많았다.
미인이란 이유로 여잔 그 모든 불리한 조건들이 상쇄시킨 것인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현 남편 <두>가 결혼으로 골인
그 당시에 서울의 유명대학을 나온 귀재인 <두>가 준과 같은 내놀것 없는 여자와 결혼을 부모가 성원했을
리가 만무였다.
-넌 무엇을 보고 멀쩡한 놈이 그런 여자와 결혼을 한단 것이냐?
-가난도, 학교도 다 후에 얻을수 있지만 한번 태어난 미모는 절대로 고칠수 없어 그럽니다
꼭 결혼을 할겁니다.
부모의 질문에 그렇게 답을 해서 한 동안 유행어가 되었었지.,
꼭 그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하였으나 군인의 신분으로 나올수가 없었다.
<두>의 부모는 물론 형제들도 모두 불참했단 후문.
아무리 미인인들 세월앞에 어떻게 변하지 않을것인가?
화무십일홍인데....
후에 들은 일이지만,<준>은 남편과의 불화가 심했더라고 애기해준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 미인을 얻었다면 한결같이 사랑을 하면 안되는 것인가?
<권태>였을까?
한동안 <준>은 우울증 비슷한 병으로 힘들게 살았단 애길 동생으로 부터 들었다.
-과연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기나 한것인가?
시티에서 맺은 절친 <덕>
이종 사촌동생과 연을 맺어 살고 있지만 이들도 결코 행복한 모습은 아닌거 같다.
-그럼 나는 행복한가?
자신있게 답을 못하겠는건 같은가 보다.
그래도 이해가 가기전에, 가까운 얼굴들 모여서 식사를 한건 잘 한거 같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서 그럴까?
의외로 식비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하긴, 소주 3병과 음료수 6병이니 그럴만도 하지.
-오빠 고마워요 서울서 여기까지 오셔서 밥도 사주시고 너무 고마워요.
-아냐 동생을 오랫만에 만나니 내가 더 즐겁다.
그냥 남편 포기하고 살아 너무 집착하면 병이 난다.
-그래요, 난 뭐 신경안쓰고 무덤덤하게 살아요 그래서 더 좋아요
<준>의 그런 말이 진실일까?
야윈 몰골이 너무도 짠해 보인다.
그 매력넘치게 이뻤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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