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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때, 군 입대전에 마지막으로 서울을 구경시켜준 사촌형님.
군 입대하면 3년은 움쩍할수 없는 몸이라 배려를 해준것이 고맙기만 했다.
아마도 그 해가 가는 마지막달인 섣달 무렵.
구경다니는데 추웠으니 그 무렵인거 같다.
흑백 사진을 보아도 추운 서울의 모습이 담겼다.
그 추위속에서도 사진은 꼬박 찍었다.
필름 한통을 다 소비한거 같다.
전문 사진기사 였던 <흥래>형님.
그때 마침 서울에 자기 오빠 집에 왔던 사촌누나인 <복>
동행하게 해준 형님덕에 같이서 구경 다녔었지.
그 누나는 겨우 한살 차이지만,엄연히 누나는 누나 아닌가?
그냥 친한 친구 사이로 지냈을뿐 한번도 누나라 부르진 않았었다.
단골로 들르는 창경원의 여기 저기.
멋진 곳은 모두 카메라에 담아 그걸 하나 하나 인화해서 보내주셨던 형님.
나를 위한 군입대 선물로 생각하신거 같다.
그땐 사진 한장 한장이 퍽 소중한 때여서...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분였기에 후에 서울에 살땐 나름대로 나도 형님을 많이 배려했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미 하늘나라로 떠난지 3년째인거 같다.
복 누나와 함께 여기 저기 답사하면서 추억을 남겼었지.
그때의 사진을 보면 <신앙촌 안내원>시절의 그 두툼한 잠바를 입고서 찍었다.
그 형님덕에 이곳 저곳을 구경하곤 맛있는 식사도 대접받고 헤어져야만 한다.
군 입대전에, 신앙촌에 2년을 살았지만 서울을 나온단 것은 쉽지 않았다.
비번날에 와야 하고, 또 소사에서 서울까지 오는데도 만원버스에 1시간을 시달려야 하는 고역.
그런 탓에 서울에 올수가 없었던 처지라 말이 수도권이지 신앙촌, 시골아니던가?
그래도 신앙촌에 살면서는, 희망과 긍지를 나름대로 느끼곤 언젠가는 서울진출을 꿈꾸고 있었지
시골생활에 정착한단 꿈은 상상도 하질 않았다.
서울과 근거리란 것이 더 접근이 쉬울거란 판단였다.
그게 서울정착과 무슨상관이 있다고...
하향하기 전에 기차를 타기 위해,서울역으로 달리는 버스를 타고 오는데..
-안녕 안녕 서울이여 안녕.....
이미자의 힛송이 흘러나오니 한순간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껴서 옆에 누나보기가 겸연쩍어 얼른 눈물을 닦았지.
남자의 주제가 뭐 이렇담? 그럴거 같아서지.
사랑하는 애인 찾아 서울에 온 여인이 변한 사람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서울을 떠나는 심정을
애절하게 부른 노래가사가 이 미자의 애조띤 음성이 어찌 그리도 서럽게 들렸을까?
이젠, 서울을 떠나고 나면 제대후 3 년후에 어떻게 서울에 안착하고 살수 있으려나?
서울에 올수는 있기나 할까?
보장도 기대를 할수도 없는 고단한 몸.
서울을 벗어나는 나를 위한 그녀의 노래가 너무도 가슴에 와 닿는다.
-아, 나는 이젠 서울을 떠나는 구나..
그래 서울이여 안녕....
나 같은 존재는 서울에서 살아갈수 있는 존재감없는 몸이니 어서 떠나라.
지금 가면 언제나 서울에 올수 있으려나..
내 존재가 참으로 처량해 보여서 그런 맘이 든거 같다.
그때 ,
너무도 가슴 저리게 닿아오던 그 노래<서울이여 안녕>
역시 이미자의 노래가 가슴 저미는 노래 아닌거 있던가?
무심히 이 노래를 듣고있으면 아련히 그 시절로 돌아가 서울에서 쫒겨가는 처량한 내 신세가
크로즈 엎되어 그려진다.
-왜?하필 하향길의 무거운 마음을 그렇게 그 순간에 흘러와 나를 아프게 했을까?
한 가수의 노래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깊이 후벼파는 마력을 지닐수 있을까?
이미자의 <서울이여 안녕>
서글픈 마음으로 서울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울려주는 명곡은,지금 다시 들어도 역시 명곡이다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나면 한번씩 듣고는 한다.
그 애절한 마음은 지금도 같은 공감을 불러온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왜 감정은 변하지 않은걸까?
군 입대하면 3년은 움쩍할수 없는 몸이라 배려를 해준것이 고맙기만 했다.
아마도 그 해가 가는 마지막달인 섣달 무렵.
구경다니는데 추웠으니 그 무렵인거 같다.
흑백 사진을 보아도 추운 서울의 모습이 담겼다.
그 추위속에서도 사진은 꼬박 찍었다.
필름 한통을 다 소비한거 같다.
전문 사진기사 였던 <흥래>형님.
그때 마침 서울에 자기 오빠 집에 왔던 사촌누나인 <복>
동행하게 해준 형님덕에 같이서 구경 다녔었지.
그 누나는 겨우 한살 차이지만,엄연히 누나는 누나 아닌가?
그냥 친한 친구 사이로 지냈을뿐 한번도 누나라 부르진 않았었다.
단골로 들르는 창경원의 여기 저기.
멋진 곳은 모두 카메라에 담아 그걸 하나 하나 인화해서 보내주셨던 형님.
나를 위한 군입대 선물로 생각하신거 같다.
그땐 사진 한장 한장이 퍽 소중한 때여서...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분였기에 후에 서울에 살땐 나름대로 나도 형님을 많이 배려했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미 하늘나라로 떠난지 3년째인거 같다.
복 누나와 함께 여기 저기 답사하면서 추억을 남겼었지.
그때의 사진을 보면 <신앙촌 안내원>시절의 그 두툼한 잠바를 입고서 찍었다.
그 형님덕에 이곳 저곳을 구경하곤 맛있는 식사도 대접받고 헤어져야만 한다.
군 입대전에, 신앙촌에 2년을 살았지만 서울을 나온단 것은 쉽지 않았다.
비번날에 와야 하고, 또 소사에서 서울까지 오는데도 만원버스에 1시간을 시달려야 하는 고역.
그런 탓에 서울에 올수가 없었던 처지라 말이 수도권이지 신앙촌, 시골아니던가?
그래도 신앙촌에 살면서는, 희망과 긍지를 나름대로 느끼곤 언젠가는 서울진출을 꿈꾸고 있었지
시골생활에 정착한단 꿈은 상상도 하질 않았다.
서울과 근거리란 것이 더 접근이 쉬울거란 판단였다.
그게 서울정착과 무슨상관이 있다고...
하향하기 전에 기차를 타기 위해,서울역으로 달리는 버스를 타고 오는데..
-안녕 안녕 서울이여 안녕.....
이미자의 힛송이 흘러나오니 한순간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껴서 옆에 누나보기가 겸연쩍어 얼른 눈물을 닦았지.
남자의 주제가 뭐 이렇담? 그럴거 같아서지.
사랑하는 애인 찾아 서울에 온 여인이 변한 사람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서울을 떠나는 심정을
애절하게 부른 노래가사가 이 미자의 애조띤 음성이 어찌 그리도 서럽게 들렸을까?
이젠, 서울을 떠나고 나면 제대후 3 년후에 어떻게 서울에 안착하고 살수 있으려나?
서울에 올수는 있기나 할까?
보장도 기대를 할수도 없는 고단한 몸.
서울을 벗어나는 나를 위한 그녀의 노래가 너무도 가슴에 와 닿는다.
-아, 나는 이젠 서울을 떠나는 구나..
그래 서울이여 안녕....
나 같은 존재는 서울에서 살아갈수 있는 존재감없는 몸이니 어서 떠나라.
지금 가면 언제나 서울에 올수 있으려나..
내 존재가 참으로 처량해 보여서 그런 맘이 든거 같다.
그때 ,
너무도 가슴 저리게 닿아오던 그 노래<서울이여 안녕>
역시 이미자의 노래가 가슴 저미는 노래 아닌거 있던가?
무심히 이 노래를 듣고있으면 아련히 그 시절로 돌아가 서울에서 쫒겨가는 처량한 내 신세가
크로즈 엎되어 그려진다.
-왜?하필 하향길의 무거운 마음을 그렇게 그 순간에 흘러와 나를 아프게 했을까?
한 가수의 노래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깊이 후벼파는 마력을 지닐수 있을까?
이미자의 <서울이여 안녕>
서글픈 마음으로 서울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울려주는 명곡은,지금 다시 들어도 역시 명곡이다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나면 한번씩 듣고는 한다.
그 애절한 마음은 지금도 같은 공감을 불러온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왜 감정은 변하지 않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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