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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
17
화요일

공부의 한 원없이 풀다 (2)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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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공부에 열등감도 없고, 홀가분하고 미련도 없어졌다.
 나 어렸을 때 꿈이(중학교 때)목표가 박사까지 하고 유학도 간다는 것이였다.
그땐 솔직히 박사가 뭔지, 유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그거하면 출세한다는 생각에
그런 목표를 가진 것 같다.
늘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힘들고 벅찼지만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였으니까.
어느날 유학이 가고싶어졌다.
태어나 다른나라에가서 3년 정도는 살아보고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나라는 중국, 난 중국에 가고싶었다. ‘그래 중국으로 가보자 , 거기가도 공부만 할 수없고 ,
돈을 좀 벌어야 할텐데 어떻게 뭘로 벌지‘ 생각했고, 누군가가 말하길
중국에가서 한국어를 가르치면 용돈벌이는 할 수 있다고 들었다.
자격증이 없으면 그냥 용돈벌이 정도는 할 수 있고(내가 교육학을 했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으니)
한국어교사 자격증을 따면 대학에 강의도 가능하다고했다. 그래서 바로 온라인 대학교인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한국어문화학과(지금은 한국어교육학과)3학년에 편입, 여기서도 장학금 받고 두서의 성적으로 졸업(2013년)했다,( 한국어정교사2급자격증 취득함)
온라인이였지만 본교가 서울에 있었고,각종 행사에 거의 참석해 교수님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잘 보냈다.
그땐 ktx도 없어 새마을호 타고 열심히 대구에서 서울을 오가며 열정이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졸업하자마자 바로 길이 열렸다. 같은 사이버대학교 동기가 중국 스촨성에 00대학교에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근데 아내가 많이 아파 한국을 나와야 한다고 그 자리에 나를 부른 것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는가!!! 술술 풀렸다
2013년 1월엔 칭따오 00국제학교에서 1개월을 초등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중국어를 배웠다. 그곳에 계속있으려했는데 3월에 스촨성 00대학교에  한국어교수로 가게된 것이다.
학교에서 교수 아파트도 줬고, 불편함은 없었다. 중국어 하나도 못하는데 어떡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거기에 한국어 잘하는 지금의 양딸(한족 학생, 그 인연으로 한국교환학생도 하고 대구 우리집에서 일주일 있으며 전국 여행도 하고 지금도 한번씩 전화옴)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으며 불편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좀아프다고 전화를 받았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큰 병원가보라 해서 가보니 
위암이란다. 전화받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바로 그날 근처 바로 사천대학교에 있는 친분있는 한국어교수(중국오다가다알게된)에게 전화를 해서 내 사정을 얘기하면서 내 강의를 맡아서 해줄 수 있냐하니 그렇게 하겠단다. 그래서 바로 인수인계하고 그 다음날 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날라왔다.
가끔 남편은 그때 생각하면 참 고맙고 미안하더라 이런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또 일하며 방송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편입했다.
(중국에서 강의없을땐 국제교육원에서 중국어를 틈틈이 배웠다.)
좀 배운게 있으니 훨씬 쉽고, 재미있고, 중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됐고,
또 그렇게 방송대학교 중어중문과를 졸업했다.
참 많이도 공부했다. 남들 하나도 잘 없는 학위가 몇 개인지 모른다.
내 나이 60을 바라보니 다 쓰잘대기없는 종이인데 그땐 뭐가 그리 중요했는지 죽기살기로 달려들고 열심히 했다. 아~~~정말 이제 공부 미련도 후회도 한도 없다.
최선을 다했기에 꿈도 목표도 거의 이루었기에 돌아보면 힘들고 눈물흘린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행복한 삶, 감사한 삶이 많았다.
더이상 공부에 대한 미련이나 원망은 없을뿐만 아니라 이젠 하더라도 즐기며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여유생길때 또 하나를 전공할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래사진은 내가 강의한 학교 전경( 중국00대학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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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1 페이지

낭만님의 댓글

남편의 병마에 그대로 그곳에 붙어있을수가 없었네요.
당연히 귀국해야죠 그때 그런일 없었다면 지금도 아마 중국에 머물고 있을거 아닌가요?
마치 공부에 한이 맺힌듯 지속적으로 파고 들었네요.
그래도 하고 싶은 공부를 햇다는 성취감은 자랑거리고 아들도 그런면을 보면 엄마를 존경하고 그럴겁니다.
대단하단 말만 드릴뿐,,,
누가 알아주든 어쩌든 자신이성취했다는 자신감은 지금도 든든할거 같아요
중국어회화도 가능하시겠네요?

무지개님의 댓글

아마도 남편이 안아팠으면 얼마나 있었을지 몰라요.
중국어 회화  처음엔 좀했는데 벌써 10년도 지난 얘기 나 잊어버렸어요. ㅎ
공부에 대한 미련도 없고, 대단한건 더더욱 아니고 꾸준히 실천했을뿐 별거없어요.
오늘 피곤하시겠네요. 편히 쉬세요. 낭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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