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ple Diary

통플다이어리 - 마음을 나누는 인터넷 일기장

일기장
2025.06
23
월요일

영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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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졸업후,
찾아간 신앙촌의 생활.
힘들고, 희망을 찾지 못할거 같아 거길 간곳이라 그럴까?
왜 이렇게 긴 시일이 흘렀어도, 그때를 잊지 못할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위기가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아, 여기도 내가 꿈을 펼칠수 있는 곳은 아니구나.

당장 밥벌이를 해야하니, 기술없지 그져 눈으로 보고 쉽게 할수 있는 작업.
<범박 비닐공장>에 취업.
전 과정이 수 작업으로 해야 하니 늘 모자란건 일할수 있는 공순이 공돌이들.
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곳이 그곳였다.
거긴,
여공 20여명인 반면 남공은 딱 5명.
시장 바구니든, 돗자리든 그 작업은 여공들이 했고,남공들은 그 뒷처리를 완성이 업무.
여공한명이 그 수작업을 한개 완성하는데 50원? 그걸 완성하는 남공들은 3원일거다.
자연스럽게 여공들이 턱없이 부족해 시골출신들을 그곳으로 모시고와 취업을 시켰다.
15세에서 19세가 주류인 여공들.
시골출신의 여공들이라 기껏해야 중졸이고 , 국졸도 많았다.
배고픈 시절이라 여성으로 진학은 꿈도 못꿀 시기
그때,. 여공들은 이곳에서 돈벌이를 했었고 상당한 수입을 올렸지만, 남공들은 아니다.
한 공간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성간에 접촉도 있고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시골살땐,
이성이라곤, 사촌누나인 복과 친하게 지냈을뿐...
떨림으로 만난 이성은 없었다.

신앙촌서 만난 그 여공 <영숙>
나보담 한살 아래여서 그런지 상당히 성숙해 보였고, 귀가길엔 같은 방향이라 동행했다.
다른 여공들 보다 세련미도 풍겼고...
그녀는, 나사렛 마을의 아파트.
난 이모할머니와 기거하는 시디 11동.
그 비닐공장서 집으로 가는길엔, 얕은 산을 넘어야 했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지만, 그 고개서 대활하면서 쉬다갔다.
존칭인지 반말인지, 생각이 나질 않지만.....
연애했던건가?
집으로 바래다 주곤 돌아오면 기분이 좋았다.
-잘가세요? 손을 흔들며 들어가는 뒷 모습을 보면서 왔다.
여공아닌 멋진 이성으로 보인건 좋아한거라 그럴것
밤이라 다방도, 빵집도 문을 닫아 대화는 늘 그 고개서 했지만...
담날이면, 그 귀가시간이 기다려진건 좋아했던가 보다.

-저 다음달엔, 포항으로 이사가요 편지로 연락해요 알았죠?
-왜 갑자기요?
-그럴 사정이 ....
동행하면서 가슴설레게 했던 <영숙>
그게 끝이었다.
편지도, 뭣도 연락할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왜 이살 갔는지...
그렇게 바래다 주곤 하면서 설렘으로 만났던게 아마도 6 개월정도
였을거 같다.
범박 비닐공장을 퇴사한건 얼마후 였으니...그녀가 안보여 쓸쓸해 그랬나?

눈이 크고, 머릴 양갈래로 딴 이뻐 보이던 그녀.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손목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먼 위치서만 맴돌다 헤어진 그녀.
그녀와 다른 이성과 셋이서 찍은 사진이 지금도 앨범엔 있다.
문득 보고 싶을때가 있다.
짧은 날였지만, 그 순간만은 좋아서 바래다 주곤 했을거니...
어느 하늘아래선가  잘 살겠지, 그럴거같다 복스런 타잎이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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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1 페이지

무지개님의 댓글

저도 그런 사람 많은데 ㅎㅎㅎ
지금은 어느곳에서 뭘하며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하지요
꼭 한번은 보고싶은 그들....
지금은 유치원생들도 손잡고 뽀뽀하는데 ㅎㅎㅎ
바보처럼 손도 못잡고 쑥쓰러워 하고~~
추억은 아름답지요.
영숙님도 한번쯤은 낭만님을 생각할 거예요.^^

낭만님의 댓글

무지개 님이 이런 추억없다면 뭣인가 문젠거죠,
그 시절은 그 만남자체로 무척 조심하고,이성간에 대화함서도 부끄러워하고 소심하고 얼굴붉히곤
했어요 순수해서 그랬을까요? 그래도 그런 설렘을 앉고서 바래다 주는 시간이 기다려진건 좋은 거죠
너무 아쉽게 헤어져 그렇네요 대담하게 손이라도 잡아보고 본심도 들어볼걸..내 탓인거 같아요
그렇게 이별이 영원한것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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